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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들깨로 진짜 기름 만들어요"

국내산 들기름 만들고 싶어 들깨 농사에 도전

정정은 씨(41)가 가족과 함께 전북 남원에 귀농한 것은 2009년이다. 서울토박이인 그는 고향에서 가축 분뇨 액비화 사업을 하겠다는 남편의 말에 선뜻 “좋다”고 했다.

 “농촌 생활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푸근한 느낌,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좋기만 했죠. 처음 몇 년은 아이들을 키우며 지내다가, 큰 애가 초등학교 입학하면서 내 일을 찾자고 생각했어요. 그즈음 남원시 농업기술센터에서 허브·약초 오일에 대한 교육을 받았는데, 직접 해보고 싶더라고요. 농기센터를 드나들면서 농업에 관심도 생겼고요.” 
그렇게 2012년 첫 농사를 지었다. 1기작 작물은 감자. 4950㎡에 심은 감자를 6월에 수확하고선 그 자리에 들깨를 심었다. 기름 가공을 하고 싶은데, 국내산 들깨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서였다.

 “들깨는 참깨에 비해 수확량이 적어 재배 농가가 많지 않아요. 가격도 참깨가 1㎏당 2만 원이라면, 들깨는 1만 원밖에 안 되고요. 그래서 들깨 농사를 직접 짓기로 했어요. 참깨는 이곳 남원과 인근의 김제·순창·고창 등 전북 지역에서 생산된 것을 씁니다. 원래 참깨는 고랭지에서는 재배가 잘 안되고 남쪽의 따뜻한 곳에서 잘돼요. 그런데 우리나라 기온이 예전보다 올랐다더니, 정말 그런지 이제는 이 지역에서도 참깨가 되더라고요.” 들깨 재배는 이듬해 8250㎡로 늘리고 나서 해마다 비슷하게 유지했다. 그러다 작년에 주문이 급증하면서 물량이 부족해, 올해 9만 9000㎡까지 면적을 늘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싹이 올라오는 시기에 저온과 가뭄이 겹치면서 8250㎡ 정도만 수확할 수 있었다.

저온에서 볶아 한 번만 짜낸 전통 방식 들기름.참기름

“기름은 그 자체로도 많이 먹는 식품이 아니에요. 현대인들은 더더욱 ‘많이 먹기’보다 ‘건강하게먹기’에 관심이 높고요. 국내산 참깨와 들깨를 원료로, 전통 방식으로 만든 기름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정씨의 들깨밭과 가공공장은 지리산 자락에 있다. 해발 500m의 청정 지역에서 원물과 가공이 이뤄지는 것이다. 지리산의 햇빛과 바람으로 건조하고 저온 압착 방식으로 기름을 만든다. 낮은 온도에서 한 번만 짜내는 방법이다. 재료 고유의 영양과 빛깔,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이 방법을 선택했다. 그리고 모든 기름은 주문 들어온 당일에 만든다.

 “깨는 많이 볶을수록 색이 진하고 기름양도 많아져요. 반면 고온에서 많이 볶으면 고유의 영양 성분이 파괴되고 벤조피렌이라는 발암 물질이 나옵니다. 이런 문제가 없도록 저온에서 볶은 깨를 이용해 한 번만 짜냅니다. 오메가3 함유량이 60%가 넘고 황금빛의 맑은 색과 향이 나지요.” 
 생들기름도 생산한다. 생들기름은 볶아서 짜는 들기름에 비해 색과 향이 연하지만, 오메가3 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이 많이 들어 있다. 이를 위해 들깨를 씻고 최소한 열과 시간을 들여 살짝 말린 다음 기름을 짠다. 알파 리놀렌산이 최대한 많이 나오도록 하기 위해서다. 참깨는 마을과 인근 지역 농가가 생산한 것을 수매한다.

참기름·달맞이 기름 지역 농산물로만 만들어

 정씨는 기름 가공을 위해 영농조합법인 지리산처럼을 설립했다. 5명이 모여 설립했는데, 그가 영농법인 대표이자 가공을 맡고 있다.

 현재 생산·판매하는 것은 참기름·들기름·생들기름·들깻가루·천연조미료 등 가공품과 콩·감자 등이다. 생들기름은 롯데백화점 명품관에서 3년째 판매 중이다. 천연 조미료는 고춧가루·소금 모두 전북 지역에서 생산된 것으로 만든다. 지역의 농산 가공품을 알리고, 소비자가 여러 양념 중에서 선택해 선물 세트를 구성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달맞이기름도 만든다. 지리산 자락에서 나는 달맞이꽃을 채취해서 생산하는 것. 일일이 다니면서 달맞이꽃을 따야 하고 착유율이 낮아 160㎖들이 50병이 채 안 나오지만, 고객이 먼저 찾는 덕분에 해마다 만든다. 달맞이 씨앗을 씻고 짜는 방법 등에 대해선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생산 제품에는 ‘행복한 정은씨’라는 문구를 넣는다. 안전한 우리 농산물로 의미 있는 과정을 거쳐, 건강한 기름을 만드는 일이 행복하다는 것을 넌지시 말하고 있다.

국내외 시장 넓혀 전통 방식 기름 알리고 싶어 

지난 7월에는 일본으로 들기름을 수출했다. 내년부터는 일본과 중국 시장으로 수출을 확대할 계획이다. 농가 계약 재배와 수매량도 늘리고, 착유법도 계속 연구할 예정이다. 또 기름으로 보습제 등 현대 생활에 맞는 제품을 개발 중이다.
 
 “들기름은 시간이 지나면 침전물이 생겨요. 침전물 속에 몸에 좋은 성분이 많지만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맑은 기름을 선호하고요. 내년에는 이 침전물을 이용해서 입술 보호제·비누 등 화장냇을 개발할 생각이에요.
 지난 8월 들기름을 수출하면서 일본에 가봤더니 참깨를 원료로 한 화장품이 이미 나와 있더라고요.” 
정씨는 국내산 농산물로 만드는 오일의 여왕이 되는 것이 꿈이다.

 “재배에서 가공·포장·마케팅에 이르기까지 계속 공부하고 있어요. 그만큼 전통 방식 기름이 좋거든요.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알리고 싶어요.” 

자녀와 귀농하는 이들이게 하고 싶은 말!

자녀와 귀농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정정은 씨 가족이 귀농한 것은 아이들이 6살·3살 때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정씨가 귀농하며 걱정했던 것은 교육·문화·의료였다. 6년여를 보내면서 그는 나름의 방법을 찾았다.

 “교육 인프라 구축이 덜 된 것은 각오해야 해요. 같은 학원·학습지라도 도시와는 다를 수 있거든요. 대신 그 지역에서 가장 잘하는 걸 가르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저희 아이들은 태권도·발레 대신 태껸과 한국무용을 배우고 있어요. 남원은 전통문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수준이 무척 높거든요. 또 책을 많이 읽도록 하죠.” 그는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기대 이상으로 잘 자라고 있다”고 덧붙였다. 마을 농산물을 모아서 벼룩시장에 내기도 하고, 마을 정자에 모여 파티도 열면서 놀며 배우는 것이다. 먹거?를 땀 흘려 키우는 부모를 보는 것도 아이들에겐 훌륭한 공부다. 문화생활은 인터넷이 충분히 대신할 수 있다고 했다.

 “의료 부분은 아직도 걱정이긴 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초등학교만 들어가도 병원 갈 일이 크게 줄어요. 아이 스스로 도시에서보다 건강해지고요. 귀농하고 아이 아토피가 사라지더라고요. 그래도 걱정된다면, 응급 처치를 위해 분야별 큰 병원을 알아두는 것이 도움됩니다.” 정씨는 서울에서 살았다면 두 아이 사교육비로 들어갔을 비용만큼 적금을 넣는다. 이 돈을 모아 작년에 가족여행을 다녀왔고, 올해도 그럴 계마이다.

 “아이를 키워야 하는 부부라면 처음부터 둘 다 농사에 뛰어들진 않았으면 해요. 한 사람이 교육받고 농사를 시작하는 동안, 또 한 사람은 월급 받는 일을 해야 불안하지 않거든요.” 

출처 : 디지털농업
글 김산들 사진 남윤중(사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