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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안이 적기 아이템 만들다

들기름을 가지고 창업한다고 하니 타박하는 이들이 많았다. 방앗간에 가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기름으로 사업을 해서 무슨 이문이 남겠냐고 반문했다. 4년이 지났다. 타박하던 이들은 이제 친환경 먹거리 시대에 최적의 아이템을 골랐다며 칭찬하기 바쁘다. 불과 4년 만에 이룬 정정은 대표의 반전 드라마가 궁금하다.

행복한 정은씨의 ‘믿고 먹는’ 들기름
참 스스럼없다. 섭외 때부터 전화 목소리가 남달랐다. 유난히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을 만나고 보니, 그는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재주까지 갖췄다. 그래서 그런지 정정은 대표와의 취재는 브랜드명 ‘행복한 정은씨의 지리산’처럼 내내 유쾌하고 흥겨웠다. 행복한 사람이 만드는 전통기름이라니 괜스레 신뢰가 간다. 지리산처럼 영농조합법인(happyjirisan.co.kr) 정정은 대표는 저온 압착하는 친환경적 착유방식으로 생산한 프리미엄 들기름을 시장에 내놓아 좋은 반응을 끌어냈다.
그런데 왜 들기름일까? 그간 들기름은 오랫동안 참기름에 가려 전통기름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분야다. 정 대표는 우연히 교육을 받으며 국내 식량자급률이 턱없이 낮다는 것을 알았다. 건강한 밥상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몸에 좋은 국산 들기름을 전통방식으로 생산하면 승산이 있겠다고 판단했다. 시장에서 소외돼 있고, 대기업이 장악한 참기름 시장과 대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오히려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청정지역인 지리산 자락에서 재배한 들깨와 참깨라면 재료에 대한 신뢰성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지역경제도 살리고 식량자급률도 높이니 일석삼조가 따로 없었다. 무엇보다 들기름은 필수지방산인 오메가3 비중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니 국민건강에 이보다 더 좋은 기름은 없었다.
정 대표의 혜안은 탁월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펴낸 「가공식품 마켓리포트 전통기름편」에 따르면, 들기름 비중은 2013년 7.9%, 2014년 8.7%, 2015년 상반기 9.6%로 점점 상승했다. 시장 규모만 작년에 150억 원 이상으로 성장했다. 특히 작년 일본 수출액이 2014년의 같은 기간에 비해 20배 이상 늘어나는 등, 식품한류의 새로운 주역이 될 조짐까지 보였다. ‘들기름은 건강한 기름’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부터다.​

기름을 팔 것인가, 전통을 팔 것인가
창업 아이템을 참 잘 잡았다고 얘기하니 손사래를 친다.
“들기름의 이미지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불과 2년 전부터예요. 그전에는 냉소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어요.”
정 대표는 우연히 다니게 된 약초 교육과정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 시중에서 파는 들기름과 전통방식의 기름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전통적인 기름은 고온에서 볶지를 않아요. 고온에서 볶아야 좀 더 고소하고 기름 양이 많아지기에 기업들이 상업화하면서 지금과 같은 형태의 들기름이 생산된 거죠. 그런데 고온에서 볶으면 영양분이 파괴되고, 벤조필이라는 발암물질이 증가하죠. 살짝만 볶아 기름을 착유하면 유해성분을 최소화할 수 있을 텐데 싶었어요. 건강한 본래의 기름을 선보이자는 생각에 전통방식의 맑은 들기름을 선보인 거예요.”
매스컴을 통해 들기름의 효능이 알려지면서 프리미엄 들기름을 고집한 지리산처럼은 화제가 됐다. 이후 들기름 업체들이 쏟아져나왔지만, 경쟁력을 가진 지리산처럼을 따라잡긴 무리였다. 그럼 지리산처럼의 경쟁력은 대체 무얼까?
기름은 종자가 제일 중요하다. 지리산처럼은 국산 종자 중에서도 농업기술센터에서 인증받은 종자만 쓴다. 원재료의 경쟁력에 철저한 세척과 저온 압착하는 3단계 친환경적 착유방법을 사용해 발암물질인 벤조필 검사에서 0.0을 받은 것도 강점이다. 화룡정점은 패키지 디자인. 신토불이 한국형 오일에 걸맞은 고급스러운 패키지 디자인과 포장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귀한 기름이 신문지에 돌돌 말려 아무렇게나 팔리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도시인들의 정서에 맞게 귀하고 폼나게 담고 싶었다. 이렇게 단장을 하고 보니 선물용으로도 제격이었다.
정 대표는 깨농사도 직접 짓는다. 제품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농사를 접을 만도 하지만, 밭에 가야 할 때가 되면 만사를 제쳐두고 작업복을 입은 채 내달리는 게 그의 일과다. 농부의 마음을 알 수 있고 신뢰의 상징이 되기 때문이란다. 명품화 전략 덕분에 롯데백화점에 입고되고, 일본 관광객들에도 인기가 높다. 작년엔 일본에 수출도 했다. 매출도 꾸준히 늘어 2012년 2,700만 원에서 2013년 1억, 2014년과 2015년 각각 4억 등, 매년 성장세다.
 
 
힘든 과정이 스펙이 되다
전북 남원에 살며 공장을 운영하는 정 대표는 남원 사람이 아니다. 사업을 하는 남편이 건강이 악화되자 도시생활에 염증을 느껴 택한 행보였다. 생산적이면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차에, 시댁 쪽 어른이 돼지 분뇨로 비료를 만드는 재생에너지 사업이 유망하다고 남편에게 권유했다. 이를 계기로 2009년 시댁 어른들이 농사를 짓고 있는 남원으로 귀농했다. 남들은 영어유치원이다 조기교육이다 하며 도시로 올라오는 판에, 남매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로 내려가는 이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강남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청담동 아줌마’라고 불러주셨어요. 제가 잘 웃고, 동네 어른들 만나면 멀리서도 달려가 인사하고 했더니,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신기해했죠. 한편에서는 얼마나 버티는지 보자는 시선도 있었고요. 빨리 적응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마을 분들이 많이 다니는 농업기술센터 교육을 받으러 다녔는데, 수강생들 중 제일 어리다보니 총무를 도맡아 하면서 사람들을 사귀게 되고 예쁨도 받았어요.”
정 대표는 특유의 친화력으로 농촌에 쉽게 흡수되었다. 그러면서 감자와 들깨 농사를 짓다가 지금의 사업 아이템을 발견하고 본격적인 사업에 뛰어들었다.
20평 남짓한 공장을 인수해 리모델링하고 식품제조업 허가를 받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이하 중진공) 청년창업지원사업 1기 사업자로 선정돼 융자를 받고 각종 지원을 받았다.
“중진공의 청년창업자금을 받은 게 큰 행운이에요. 사실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사업가적인 마인드도 갖추게 되고, 프레젠테이션과 서류준비도 강해졌으니까요. 첫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는 얼마나 긴장했던지, 끝나고 인근 병원에 입원하기도 했어요(웃음). 첨단 업종이 아니라고 홀대하던 다른 기관과 달리, 중진공의 멘토님들은 농업을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사업모델을 만들어보자

출처

글 최윤경 객원기자 
사진 박명래 객원사진기자​